영빈 이씨

2019. 4. 18. 12:35체험학습 /윤동주

최동군, 문화재 속 숨어있는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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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은 도성 밖에 만들어야 한다는 국법을 무시해가면서까지 신덕왕후의 왕릉을 경복궁의 바로 앞인 지금 덕수궁 근처에 만들었다.

석물 몇 개는 거꾸로 놓여 있어.

숭유억불을 강조했던 조선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건국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고려 문화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어 석물에서도 불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것.

중국 무협지에 자주 등장하는 무기인 금강저

영탁과 영저가 새겨진 돌의 가운데 부분이 앞으로 살짝 돌출되어 있는 이유는 영탁과 영저가 새겨진 돌이 왕릉의 우석(모서리돌)이기 때문이다. 즉 봉분을 둘러싸고 12지신에 해당하는 12개의 호석 또는 면석이 원형으로 배치될 때, 면석과 면석 사이의 빈자리를 메꾸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가운데 부분이 돌출되어 있는 것.

 

영조 2번째 후궁이자 사도세자 생모 영빈 이씨 무덤 수경원. 학교 확장 과정에서 고양시 서오릉으로 이전.

조선의 모든 왕릉이나 원에 해당하는 무덤은 반드시 풍수지리상 명당자리를 골라 쓴다. 옛 수경원 자리도 명당임에 틀림없는데 연세대 뒤쪽 무악산(현재 안산)을 주산으로 삼고 남남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명당 기운은 그냥 땅 속에서 솟아나는 기운이 아니라 산줄기를 타고 온다. 우리나라 명당 기운의 발원지는 물론 민족의 영산, 백두산.

세자 10가지 비행...이 정도 일로 일국의 세자를 죽이기까지는 명분이 약하다.

듣기 싫은 말을 들으면 즉시 물을 가져오게 하여 귀를 씻고 그 물을 사도세자와 화협옹주의 거처 쪽에 버리게 하는 등 자식들에 대해서도 편애가 매우 심하였다고 한중록 등 여러 기록은 전하고 있다. 영조와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종합해 볼 때 영조에게는 편집성 인격장애라는 정신과적 진단이 내려질 수 있다고.

이때 양의 기운을 ()이라고 하고 음의 기운을 ()이라고 한다. 혼은 신이 되고, 백은 귀가 되니, 귀신이라는 말도 결국 음양이 혼재된 표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