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학습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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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영의 서울 숨은그림 찾기]서울 한복판서 울리는 종소리 '성공회 주교좌성당'
관광객이나 샐러리맨들로 늘 북적이는 평일 정오 서울 시청 한복판을 걷다 보면 딩~ 딩~ 하고 경건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 종소리를 따라 서울 시의회 건물 뒤편 샛길로 조금만 걸어들면 번잡한 도심 속 한적한 유럽풍 주홍색 기와지붕에 한국적 미가 혼합된 고풍스러운 성당을 만날 수 있다. 이 건물이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성당’ 이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성당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성당 잠깐 대한성공회를 설명 하자면 1890년 영국 해군의 종군사제였던 존 코프 신부에 의해 강화도를 거쳐 우리나라에 전해진 영국의 국교회이다. 그리고 성공회는 전 세계에 약 1억 5천만명의 신도수를 거느린 기독교의 중요 교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성당 1978년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
2020.07.01 -
“신사참배 싫어 중학 중퇴하고 1년간 독서한 게 평생 자산됐다”
‘100살 철학자’ 김형석 명예교수 젊은이 대상 철학에세이 2권 출간 “평양 숭실중때 윤동주와 둘만 자퇴”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20일 ‘100세 철학자의 인생, 희망 이야기’에 이어 ‘100세 철학자의 철학, 사랑 이야기’를 내고 기자 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오래 글을 써보니까 ‘인간 문제’에 대한 이야기, 사상이나 윤리라든지 그런 것은 세월이 지나도 좀 남구요. 정치적인 이야기, 그때그때 요청받았던 ‘시대의 문제들’은 좀 빨리 사라지고 마는 것 같아요. 이 책에 실린 글을 쓴 지 50~60년이 지났기 때문에 걱정스런 마음도 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 없는 문제들이니, 독자들이 생기면 고맙겠어요.” 1920년에 태어난 ‘100살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이 시대의 젊은이들..
2019.08.21 -
[기고] 윤동주 시인 서거 73주년에 부쳐
[기고] 윤동주 시인 서거 73주년에 부쳐 ShareKakao More ▲시인 윤동주. 고유의 명절, 설날인 2월 16일은 윤동주 시인의 서거 73주년이 된다. 오늘도 우리는 시대의 아픔을 안고 해방을 꿈꾸며 밤하늘에 별빛 같은 삶을 산 시인 윤동주와 시를 다시 기억하게 된다. 윤동주 시인이 시인으로 자리한 것은 문학에 심취해 1935년 10월 발간된 『숭실활천(崇實活泉)』제15호에「공상(空想)」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이 시는 최초로 활자화 된 것으로, 황순원의 시와 양주동 박사의 글이 함께 게재돼 주목을 받게 된다. 윤동주 시인은 1941년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기념해 자선시집을 77부 출판하려 했다. 시집 제목을「병원」으로 하려고 했을 만큼, 그는 일제 치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우리 민족에 대한 치유와 ..
2019.05.07 -
日서 윤동주 시 왜곡 논란…"'하늘'이 '빌 공'으로"
윤동주 연구자 김응교 교수 "'역사성' 지우고 '착한 사람'으로 박제화" [CBS노컷뉴스 이진욱 기자] 영화 '동주' 스틸컷(사진=영화사 루스이소니도스 제공)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시인 윤동주(1917~1945)의 작품이 일본에서 왜곡 번역됨에 따라, 그가 '역사성'을 잃은 채 단순히 '착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는 비판이 나온다. 오는 12일부터 9월 19일까지 서울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열리는 '세계가 취(醉)한 우리문학' 기획특별전 프로그램 가운데, 시인 정지용(1902~1950)과 윤동주의 번역문학을 전시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전 세계 42개 언어로 번역된 한국문학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를 총괄하는 기획위원단 측은 "정지용과 윤동주는 일제강점기의 어려운 시기에도 우리말의 육체와 정신을 세계적..
2019.05.07 -
[겸재 정선 그림 속 길 (16) 옥류동~세검정 ⑤] 윤동주의 조선女와, 안평대군의 꿈 얽힌 길
(CNB저널 = 이한성 동국대 교수) 수성동에서 올라온 해맞이공원에는 주민들이 쉴 수 있는 공간과 운동기구들이 잘 정비되어 있다. 길은 평탄히 이어져 있는데 잠시 후에는 나무로 가꾸어 놓은 쉼터도 지나간다. 여기에서 오솔길을 따라 찻길과 이어져 있는 자락길까지 올라가면 무무대(無無臺)라고 이름 붙여 놓은 전망대가 있다. ‘아무것도 없구나. 오직 아름다운 것만 있을 뿐’. 무무대라고 쓴 돌맹이에는 이런 말도 써 놓았다. 세상이 그렇게 되면 정말 좋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전망대에서 문안(門안)을 내려다본다. 요즈음에는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흔히 쓰던 말이다. 4대문 안 지역을 이르는 말인데 요즈음 표현으로 하면 시내쯤 되는 말이다. 무무대에서 다시 그늘 길로 되돌아 와 나아가면 옥..
2019.05.07 -
[도서관 그 사소한 역사 11] 윤동주문학관
[도서관 그 사소한 역사 11] 윤동주문학관 ① [오마이뉴스 글:백창민, 글:이혜숙, 편집:이주영] 도서관 이용자와 도서관 사서가 함께 쓴 도서관 역사 여행기입니다. 대한제국부터 대한민국까지 이어지는 역사 속 도서관, 도서관 속 역사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오늘날 서울은 한강을 기준으로 강북과 강남으로 나뉜다. 조선시대 한양은 어땠을까? 한양은 북촌과 남촌으로 나뉘었는데, 그 경계는 청계천이었다. 청계천을 기준으로 북쪽 동네는 북촌, 남쪽은 남촌이라 했다. 경복궁과 창덕궁에서 가까운 북촌에는 집권층인 노론이 살았고, 남산 인근 남촌에는 권력에서 소외된 소론, 남인, 북인이 살았다. 북촌, 남촌 외에 윗대와 아랫대라는 구분도 있었는데, 청계천 상류인 인왕산 아래 지역을 윗대(또는 웃대, 上垈)라 하고, 청..
2019.05.06 -
배우 이민정의 외가는 '서촌 비밀의 정원'
배우 이민정의 외가는 '서촌 비밀의 정원' [백운동천을 따라 서촌을 걷다 21] 종로구립미술관과 송석원 시사 통인시장 입구에서 옥류동천 물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맛집과 악세사리점들이 가득이다. 통인시장에서 수성동계곡까지가 소위 서촌기행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몰리는 곳에 장이 선다'는 옛말을 실감나게 만드는 곳이다. 그래서 이곳을 지나면 비록 수많은 인파에 정신없지만 우리들의 눈과 입을 한가롭게 놔두지 않는다. 하지만 뭐든지 과하면 문제가 있는 법이다. 서촌보다 먼저 관광지로 개발된 북촌 역시 이런 과도한 상업화로 인해 요즘 몸살을 앓고 있다. 서촌 역시 북촌의 후유증을 따라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서촌의 비밀정원', 박노수 가옥 큰사진보기 ▲ 박노수 화백이 거주하던..
2019.05.02 -
일제강점기 조선 최대 가정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19962 ▲ 일제강점기 윤덕영의 ‘벽수산장’과 그가 출가한 딸을 위해 지어준 집(현 종로구립미술관) ⓒ 유영호 관련사진보기 우리가 소위 '서촌기행' 때 가장 많이 찾는 명소는 대부분 옥인동 주변에 몰려 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인 1927년 이 옥인동 면적의 54%를 소유한 조선인이 있었다. 조선의 마지막 황후 순정효황후의 큰아버지인 윤덕영이 그 주인공이다. 약 1만 6천 평 대지 위에 지하 1층 지상 3층, 795평에 이르는 당시로서 조선인 최대 가옥인 '벽수산장'이 그의 집이었다. 그 위치는 앞서 들른 종로구립미술관(박노수가옥) 뒤편 대부분의 땅이다. 큰사진보기 ▲ 김수정, ‘옥인동 윤씨가옥..
2019.05.02 -
청와대 습격과 푸에블로호 사건에 숨은 사실
[백운동천을 따라 서촌을 걷다 38]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70751 [오마이뉴스 글:유영호, 편집:김지현] 1968년 1월 21일, 청와대 습격 사건 창의문 바로 아래.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과 정종수 순경의 순직비가 설치돼 있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등 32명의 북한 무장병(124군 부대)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가 총격전까지 벌어졌다. 최규식 경무관과 정종수 순경은 그 와중에 사망했다. 북한의 무장병이 그 해 한겨울인 1월 18일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능선을 타고 3일 만에 청와대까지 뚫고 내려온 엄청난 사건이다. ▲ 1.21사태 총격전으로 숨진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우)과 정종수 순경의..
2019.05.02 -
영화 <동주>가 놓친 윤동주의 벗 강처중
[백운동천을 따라 서촌을 걷다 22] 종로구 누상동 [오마이뉴스유영호 기자] ▲ 윤동주 하숙집이 있던 자리에 재건축된 2층 슬라브주택 ⓒ 유영호 박노수가옥을 나와 조금 걸으니 이내 100미터도 안 되는 곳의 연립주택담장에 그곳이 시인 윤동주가 하숙했던 집(종로구 누상동 9번지)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본래의 집은 헐리고 지금은 2층 다세대주택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본래 윤동주가 존경하던 소설가 김송의 집이 있었다. 이곳에 윤동주가 1941년 하숙하였고, 이곳에서 (1939) 그리고 (1941.9) 등 그의 대표작들이 창작되었다고 쓰여 있다. 그리고 이곳 종로구 누상동에 잠시 머문 윤동주의 영향력은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2012년 창의문 앞에 '윤동주문학관'까지 건립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이..
2019.05.02 -
화성행차
8일 화성행차 1795.윤2/9~16 군복입고 능행차 총 66회. 곤룡포입고 가마타면 편한데 왜 힘들게 말타고 무거운 군복입었나? 가마탄 왕보다 늠름하게 말탄 왕 더 쎄보여. 백성들보기에 조선을 지켜줄 믿음직한 왕이미지. 신하들도 칼차고 말탄 왕 보면 기죽어. 화성능행도 8폭 한강주교환어: 노량진 배다리 7폭 환어행렬: 화성행차 마치고 하루 쉬려고 시흥행궁 들어가는 어가행렬 6폭 득중정어사: 불꽃놀이. 화약이름 매화포. 화약무기개발. 5폭 서장대야조: 야간 군사훈련 4폭 낙남헌양로연 3폭 낙남헌방방: 과거시험. 2폭 봉수당진찬: 홍씨 회갑잔치. 정조엄마 생일파티. 1폭 화성성묘전배: 공자 위패 모신 대성전 참배 1날(윤2/9) 화성행궁 1789 창건 1796 확장 2003 중건. 일제강점기 파괴. 신풍루..
2019.04.18 -
화성행궁
정조의 효심이 지은 화성행궁 수원을 팔달산 아래로 옮긴 초기에 세워. 이때는 전각 한 채만 있었는데 화성 성곽 쌓으면서 행궁 다시 크게 짓다. 어머니에 대한 정조의 효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름? 봉수당: 어머니의 장수를 축하한다는 뜻 신풍루: 한나라 고조 고향 ‘풍패’의 풍자를 따서 붙인 것. 장락당: 오랜 즐거움. 제일 먼저 공사한 곳. 혜경궁 홍씨 머무를 정조의 효심 깊이 배어 있는 이름. 이향숙, , 기탄출판(2008) 머물던 곳. 축하하는 뜻 봉수당 남쪽으로 긴 행랑을 연결하여 그 끝에 2층 누문인 ‘경룡관’ 지어. 왜 봉수당에 행랑 연결해서 지은 줄 아니? 어머니가 봉수당을 지나지 않고도 바로 장락당으로 가실 수 있도록 한 거. 건물 하나를 짓더라도 어머니를 생각하는 아들의 세심한 배려가 듬뿍 ..
2019.04.18 -
영빈 이씨
최동군, 문화재 속 숨어있는 역사 https://www.kyobostory.co.kr/contents.do?seq=283 왕릉은 도성 밖에 만들어야 한다는 국법을 무시해가면서까지 신덕왕후의 왕릉을 경복궁의 바로 앞인 지금 덕수궁 근처에 만들었다. 석물 몇 개는 거꾸로 놓여 있어. 숭유억불을 강조했던 조선임에도 불구하고 조선이 건국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고려 문화의 잔재가 많이 남아 있어 석물에서도 불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것. 중국 무협지에 자주 등장하는 무기인 금강저 영탁과 영저가 새겨진 돌의 가운데 부분이 앞으로 살짝 돌출되어 있는 이유는 영탁과 영저가 새겨진 돌이 왕릉의 우석(모서리돌)이기 때문이다. 즉 봉분을 둘러싸고 12지신에 해당하는 12개의 호석 또는 면석이 원형으로 배치될 ..
2019.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