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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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진 김주열 열사 시신, 바다에 버릴때 내가 운전했다"
김덕모씨, 3·15의거 56주년 앞두고 묘소 참배 '56년만의 증언' 16.03.13 21:55l최종 업데이트 16.03.13 21:55l 글: 윤성효(cjnews) "그동안 죄스러웠다. 위에서 시키니까 운전을 하기는 했지만…. 그동안 많이 기도했다. 천국에서 편안히 잘 쉬고 계시라고 빌었다. 그런 마음으로 매일 새벽 묵주기도 15단을 드렸다." 김덕모(76, 마산)씨가 3·15의거 56주년을 앞두고 13일 오후 국립3·15묘역에 있는 김주열(1943~1960) 열사 묘소를 참배하고 나오면서 한 말이다. 천주교를 믿는 김씨는 묘소 앞에 헌화한 뒤 성호를 그어 기도했고, 묘비를 쓰다듬었다. ▲ 1960년 3월 16일 새벽, 경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마산 앞바다에 버릴 당시 짚차를 운..
2021.06.09 -
[해방일기] 1948년 5월 27일
[해방일기] 1948년 5월 27일 [프레시안 김기협 역사학자] 1948년 5월 27일 남조선 과도 정부 법령 제193호로 유흥음식세, 입장세, 골패세의 세령 개정이 1948년 5월 22일 발포되었는데 '골패세(骨牌稅)'가 무엇인지 어리둥절하다. 5월 27일 윤호병 재무부장이 발표한 개정 내용 중 골패세에 관한 설명은 이런 것이었다. 골패세는 지제(紙製)의 것 5원이던 것을 50원으로 그 외의 것 15원이던 것을 100원으로 마작 100원이던 것을 500원으로 각각 올리었다. ( 1948년 5월 29일) 골패세가 무엇인지 검색해 보니 화투, 마작 등 도박 도구에 붙이는 특별소비세 같은 것으로 1931년 도입되었다고 한다. 식민지 조선에서 도박의 성행에 대한 대책으로 제정한 것이라는데, 마작 한 틀에 3원..
2020.08.17 -
엿장수에게 '고물'로 팔려갔다 돌아온 국보
국보 제143호 '화순 대곡리 출토 청동유물' [오마이뉴스 임영열 기자] ▲ 1971년 여름, 전라남도 화순군 도곡면 대곡리 구재천 씨의 집 배수로 공사 중에 동검 3점, 청동거울 2점, 팔주령 2점, 쌍두령 2점, 도끼 1점, 새기개 1점 등 청동유물 11점이 발견되었다. 출토지가 확실히 밝혀진 이 청동유물은 1972년 국보 제143호로 지정됐다 ⓒ 국립광주박물관 1971년 여름. 뜨거워진 날씨만큼이나 한국 고고학계를 후끈 달구며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두 가지 드라마틱한 사건이 일어난다. 대한민국 사적 제13호로 지정된 백제의 옛터, 충청남도 공주의 '송산리 고분군'은 매년 장마철이 되면 무덤 안에 빗물이 스며들어 벽화가 훼손되고 있었다. 특히 일본인들에게 심하게 도굴당한 6호분은 그 정도가 심했다..
2020.04.08 -
갑신정변
갑신정변은 고종21년에 일어났다. 그날 밤 우정국 총판 홍영식은 우정국 낙성을 기념하는 연회를 베풀고 많은 사람들을 초청했다. 그 자리에서 민영익, 윤태준, 이조연, 한규직 등 민씨 척족들과 친청파 대신들을 일망타진할 계획이었다. 그들은 약속된 방화를 신호로 민씨 척족들을 살해하고 바로 궁궐에 들어가 고종과 왕비 민씨를 장악할 계획이었다. 이윽고 바깥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민영익이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 나가자 자객이 달려들어 칼로 쳤다. 그러나 제대로 목을 베지 못하고 귀만 잘랐다. 칼을 맞은 민영익은 안으로 도망쳐 들어와 연회장에서 쓰러졌다. 순간 연회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때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등은 재빨리 자리를 빠져나와 창덕궁으로 갔다. 그들은 고종와 민씨를 협박하여 일본군을 부..
2019.07.12 -
[서해성의 박학다설] 호랑이는 왜 담배를 먹었나
*내용 인용시 tbs 와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방송 : 2018. 6. 15. (금) 18:18~20:00 (FM 95.1)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서해성 작가 [서해성의 박학다설] 호랑이는 왜 담배를 먹었나 ▶ 김종배 : 여러분들이 기다리셨던 시간입니다. 박학다설 시간인데요. 우리시대의 지식광대 서해성 작가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 서해성 : 안녕하셨습니까? ▶ 김종배 : 앞서 6시 때 1부에 제가 방송 진행하고 있는데 문자가 올라오기를 ‘지금쯤 서해성 작가님이 오고 계시겠죠?’라는 어떤, 아이디를 지금 기억을 못하는데, 팬 많아서 좋으시겠어요. 뿌듯하시죠? ▷ 서해성 : 김종배 선생님보다 적으니까 그래도, ▶ 김종배 : 아닌 것 같은데, 좋아하시는 분들이..
2019.05.15 -
[배한철의 한국초상화 톺아보기] 효자 영조가 평생 누비옷을 입지 않은 이유
신숙주(1417~1475)가 단종비를 차지하려고 했던 게 사실일까. 이긍익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서 파수편(破睡篇)과 월정만필(月汀漫筆)의 구절을 인용해 “노산의 왕비 송 씨가 관비가 되니 신숙주가 여종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세조가 그의 청을 듣지 않고 단종비에게 궁중에서 정미수(시누이 경혜공주의 아들, 즉 문종의 외손자)를 기르도록 명했다”고 전했다. 단종비 정순왕후를 첩으로 삼으려고 해 지탄받았던 신숙주 초상 이런 내용은 조선 말 3대 문장가로 꼽히는 김택영이 구전 등을 정리해 엮은 ‘한사경’에도 언급된다. 김택영은 “세조가 조카를 죽이고 여러 아우들을 살해하여 임금의 지위를 훔친 것도 사악한데 (신숙주가) 단종 부인을 노비로 삼겠다고 청한 것은 매우 간사하고 악한 짓”이라고 논평했다. 단..
2019.04.25 -
[배한철의 한국초상화 톺아보기] 박문수는 어떻게 ‘암행어사의 아이콘’이 됐나
마패와 남루한 옷차림이 먼저 떠오르는 ‘암행어사’하면 단연 ‘박문수’다. 백성들의 고혈을 짜는 탐관오리를 혼내주는 암행어사 박문수 얘기는 1970~80년대 TV나 라디오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다. “암행어사 출두야”라는 박문수의 호령에 지방수령들이 혼비백산해 도망하는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했다. 조선시대 암행어사는 국왕의 명으로 몰래 지방관을 감찰하고 그들의 비리를 척결하던 관원이었다. 조선시대 숱한 암행어사가 파견됐지만 유독 박문수만이 암행어사의 대표주자로 인식되고 있다. 전국에서 박문수와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어사 설화는 무려 200개가 넘는다. 오늘날까지 그의 이야기는 여전히 드라마나 소설 등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설화에서 박문수는 남들이 밝혀내지 못하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명석한..
2019.04.25 -
[배한철 기자의 한국초상화 톺아보기] 종2품에 오른 성공한 화가 겸재 정선
국보 216호 '인왕제색도'는 비 온 뒤 안개가 피어오르는 인왕산의 실제 모습을 사실적으로 화폭에 실은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불후의 명작이다. 국보 217호 '금강전도'는 마치 항공촬영을 하듯 하늘 위에서 금강산 1만2000봉우리를 장대하게 담아내 금강산 그림 가운데 단연 최고로 평가받는다. 이들 그림을 그린 겸재 정선(1676~1759)은 중국 관념산수의 답습이 아닌 중국 화본을 바탕으로 조선의 실제 산천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라는 새로운 화풍을 개척한 인물이다.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였지만 중인신분의 김홍도와 신윤복 등과 달리 양반 출신이었으며 성리학 등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고 말년에 이르러서는 벼슬까지 종2품의 동지중추부사에 오른 드물게도 '성공한' 화가였다. 건강한 삶을 살..
2019.04.25 -
[배한철의 한국초상화 톺아보기]강화도령 철종은 사팔뜨기
초상화를 그 초상화의 주인공과 동일시하는 ‘一毫不似 便是他人’(일호불사 편시타인, 터럭 한 오라기라도 다르면 그 사람이 아니다)의 명제는 중국에서 비롯됐지만 우리나라에서 만개하면서 극사실주의 화풍이 크게 유행했다. 그와 동시에 형상을 그대로 옮기는데 그치지 않고 내면의 정신을 외면의 형상으로 표현하는 경향도 두드러졌다. 유교 경전 중 하나인 ‘대학(大學)’에 ‘성어중 형어외’(誠於中 形於外)라는 귀절이 있다. “마음에 내적인 성실함이 있으면 그것이 밖으로 반드시 드러나는 법이다”라는 의미다. 조선의 선비들은 외모는 내면의 정신세계를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전신사조(傳神寫照) 풍조이다. 사실 조선초상화 제작에는 원시적인 형태의 카메라인 ‘옵스쿠라’가 이용되기도 했다. 암실에 뚫린 작은 구멍을 통..
2019.04.25 -
팔달문
정조의 꿈을 품은 성곽 수원화성 왜 유네스코 지정? 짧은 역사지만 동서양 군사시설이론 잘 배합. 모든 건조물 각기 다른 모양으로 예술적 가치 지녀. 실학사상 영향. 동서양 성곽축성술 집약. 보물: 팔달문 화서문 현안, 옹성벽 세로줄, 포루 5개, 정약용 가장 강조한 방어시설. 성벽 일부 돌출, 내부 비워 화포 숨겨 적공격, 수많은 총안or포혈, 포격에 한번에 부서지지 않는 벽돌건축 서남암문, 팔달산 가장 전망좋은 곳 각루, 성 네모서리에 누각세워 사방 관찰 서북각루, 온돌설치 동북공심돈, 소라각, 위아래 구멍통해 바깥동정 살피거나 사격. 팔달문. 보물402. 옹성(항아리 옹, 독 반으로 쪼갠 모양, 성문보호. 성 튼튼히 지키기 위해 성문 밖에 원형or방형으로 쌓은 작은 성,). 1980년대 팔달문주변 수..
2019.04.18 -
[겸재 정선 그림 속 길 (16) 옥류동~세검정 ⑤] 윤동주의 조선女와, 안평대군의 꿈 얽힌 길
제606-607합본호(추석) 이한성 동국대 교수⁄ 2018.09.27 09:39:33 (CNB저널 = 이한성 동국대 교수) 수성동에서 올라온 해맞이공원에는 주민들이 쉴 수 있는 공간과 운동기구들이 잘 정비되어 있다. 길은 평탄히 이어져 있는데 잠시 후에는 나무로 가꾸어 놓은 쉼터도 지나간다. 여기에서 오솔길을 따라 찻길과 이어져 있는 자락길까지 올라가면 무무대(無無臺)라고 이름 붙여 놓은 전망대가 있다. ‘아무것도 없구나. 오직 아름다운 것만 있을 뿐’. 무무대라고 쓴 돌맹이에는 이런 말도 써 놓았다. 세상이 그렇게 되면 정말 좋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전망대에서 문안(門안)을 내려다본다. 요즈음에는 잘 쓰지 않는 말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흔히 쓰던 말이다. 4대문 안 지역을 이르는 말인데 요즈음..
2019.04.10 -
사생활? 왕은 용변조차 어의에게 맛보여야 했다
사생활? 왕은 용변조차 어의에게 맛보여야 했다 기사입력2010.07.05 [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이미지 원본보기 조선 제19대 숙종 임금의 후궁인 최 숙빈의 삶을 다루고 있는 MBC 드라마 . 6월 29일 30부를 지켜본 시청자들은 한성으로 귀환한 동이(한효주 분)가 숙종 임금(지진희 분)과 심야 데이트를 즐기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런 장면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방영된 바 있다. 장 희빈(이소연 분) 측의 박해를 피해 한성 밖으로 피신하기 전에도 동이는 임금과 여러 차례 술자리를 가졌다. 어떤 때는 돼지 껍데기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신 적도 있다. 이들의 데이트는 궐 밖에서 뿐만 아니라 궐 안에서도 수시로 이루어졌다. 한적한 밤에 동이가 바람을 쐬러 나오면, 어떻게 알았는지 어디선가 숙종이 나타나서 이..
2019.04.10 -
어진
27명 왕 중 태조, 영조, 철종, 고종, 순종 5명 어진 현존. 6.25때 부산으로 옮겨 보관한 어진 대부분 화재로 소실.
2019.04.09 -
<소나무를 찾아서>(4)안면도 솔숲-쭉뻗은 美松, 수원성 대들보로 사용
천년 소나무 왕국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었다. 누구 하나 관심 가 져주는 이 없어도 씩씩한 기상으로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궁 궐의 대들보로, 군함의 조선재로 제몫을 다했던 영광의 세월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천년 왕국을 지키고 선 안면도의 소나무는 변함없이 푸르렀다. 중부 서해안 지방에서 가장 혈통 좋은 소나 무들이 살고 있는 곳. 단 한가지 수종, 소나무를 500여년 동안 지속 적으로 보호해온 조선왕조의 철저한 노력이 숨쉬는 곳. 안면도 솔숲을 설명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내용이다 . 안면도 솔숲의 이런 명성이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은 아니다. 그 명성은 1000년 전의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후기 김정호가 편찬한 ‘대동지지’ 지리서나 문물제도를 정리한 ‘증 보문헌비고’에서..
2019.04.06 -
정조 국화도
[오늘 본 옛 그림] (37) 대찬 임금의 그림 솜씨 혹부리 바위 뒤에 들국화 송이송이 샐그러지게 피었다. 위로 거우듬하고 아래로 배뚜름하게 짝을 이룬 꽃과, 가운데 얼굴만 살짝 들이민 꽃이 잘도 어울려 건드러진 구도를 이룬다. 줄기와 잎은 짙은 먹, 꽃은 옅은 먹으로 그려 농담이 엇갈리되 활짝 핀 꽃의 낯빛은 나우 함초롬하다. 야생의 정취가 서린 참 사랑스런 그림이다. 이 알량치 않은 솜씨는 누구 것인가. 그림에 낙관이 있다. 새겨 넣기를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다. 풀이하면 ‘온갖 물줄기를 고루 비추는 밝은 달의 임자’다. 조물주에 버금가는 이런 대찬 호를 쓴 이는 나라 안에 단 한 사람, 바로 정조다. ‘개혁군주’에다 근래 쏟아진 그의 간찰 때문에 ‘성미 불뚝한 강골의 지략가’ 이미지까지..
2019.04.06 -
<조선왕조실록>에도 실려 있는 장용외영 5위의 상징 깃발
에도 실려 있는 장용외영 5위의 상징 깃발 [오마이뉴스 한정규 기자] 중 정조 22년 10월 19일(1798년)자 정조실록 기록을 보면, '비변사가 아뢴 장용위 외영 5읍 군병의 절목'이란 장용외영 5위에 대한 기사를 볼 수 있다. "장락 전위(長樂前衛). 정병(正兵)은, 본부의 남쪽 경내에 있는 장락대(長樂隊) 635명을 여기에 소속시키는데, 관하(管下)의 5부장(部將)이 각각 127명씩 거느리게 합니다. 성정(城丁)은, 남성(南城)의 팔달위(八達衛)가 여기에 예속되는데, 본부의 남쪽 경내에 있는 팔달대(八達隊) 1104명에 대해서는 전(前)·좌(左)·중(中) 3부(部)가 각각 368명씩 거느리고, 진위(振威)의 팔달대 720명에 대해서는 우(右)·후(後) 2부가 각각 360명씩 거느리게 합니다. 본부..
2019.04.05 -
김남일, 수원을 걷는 건 화성을 걷는 것이다
김남일, 수원을 걷는 건 화성을 걷는 것이다 정조 13번 능행. 종합건축보고서 화성성역의궤. 목수335, 미장이295, 벽돌장이150, 대장장이83, 개와장이34, 수레장이10, 화공46, 나막신장이34, 일제 행궁 옆 화령전에 자혜의원 개원. 행궁 정전 봉수당 병원 본관으로 사용. 대대적인 행궁 침략. 부수고 제멋대로 고쳐 사용. 1925 봉수당 헐고 2층 벽돌 건물 세워. 1935 낙남헌만 남아. 1795 원행(임금이 부친 무덤 가는 일) 8일. 창덕궁, 시흥, 안양 60킬로. 수행원 1722명, 영조 35세에 효장세자 죽음. 마흔에 사도세자 얻어 양주 배봉산 수은묘->영우원, 사당 경모궁으로 격상. 즉위 13년 되던 해 1789 스스로 풍수 보고 점찍은 수원부 화산으로 천장 결정. 수원 화성 축성 ..
2019.04.03 -
[끝나지 않은 정조의 건축]공심돈의 발생과 전파
공심돈이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은 수원화성 뿐이다. 높은 공심돈은 멀리서도 보이고 미학적으로 뛰어난 형태를 가지고 있어 화성의 랜드마크 역할을 해왔다. 공심돈은 순수하게 우리의 창작품이 아니고 중국에서 명나라시기에 처음 등장한다. 이 시설의 발생과정과 우리나라로 전파되는 과정을 여기서 살펴보고자 한다. 성벽을 기어오르는 적을 쏘기 위해 성벽 밖으로 내밀어 만든 구조물을 치(雉)라고 한다. 성벽에서 돌출된 모습이 꿩을 닮았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고 유럽에선 Bastion라고 한다. 치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만들어져왔고 한반도의 고대국가 유적에서도 발견된다. 치성제도(雉城制度)는 전쟁의 역사 속에 발전하여 적대(敵臺)가 되고 적대는 더욱 발전하여 공심돈(공심적대)이 된다. 적대는 본성과 높..
2019.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