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연애하듯 공부하고 연애하듯 일하라] 산천 유람은 한권의 책…그래서 자연이 그립다

2019. 12. 24. 11:26강의/공부법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그 속담과 같이 “늦게 배운 공부재미에 날 새는 줄 모른다.”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도둑질과 달리 공부는 그런 것이 아니다.

‘습관이 오래 되면 품성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그 품성이라는 것이 한 번 형성되면 도저히 바꿀 수가 없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다. ‘품성은 문으로 내쫓으면 창문으로 들어온다.’ 어릴 때부터 독서나 공부에 대한 좋은 습관이 들지 않으면 쉽지 않다는 말인데, 어려서 배운 공부법이 평생을 따라 다닌다는 말이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사람들은 여행을 위해 집을 나서서도 마음이 편치가 않다. 내가 이렇게 떠나면 아이들이 공부를 잘 못하는 것은 아닐까? 좋은 학교에 가지 못해서 나중에 잘 못 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근심의 원인은 공부 탓이다.

공부, 어떻게 하는 공부가 가장 바람직한 공부일까?

공부를 하는 방법이 몇 가지가 있다. 즉 노동으로 하느냐, 아니면 놀이로 하느냐, 아니면 의무나 책임으로 하느냐, 그러나 그 몇 가지가 경우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다.

공부 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과 연애를 하는 것,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 또는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이 도박을 하는 것처럼 한다면 침식(寢食)을 잊어도 좋을 만큼 재미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공부를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오랜 세월 저편에서부터 성적에 따라 등수와 등급이 매겨지고 학교가 결정되다 보니 엄청난 중압감을 가지고 힘겹게 하는 것이 소위 요즘의 학교 공부다.

‘창조성을 중시하는 학교’라는 말에 걸맞지 않게 학교에서 창조성을 중시하는 교육은 사라지고 달달 외워서 일류대만 선호하고 일등만 대우받는 공부를 가르치고 있다. 이런 시대에 자발적인 공부나 혼자서 독학을 한다는 것은 하늘에 있는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되었다. 왜 그런가?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이반 일리히는 〈성장을 멈춰라〉에서 다음과 같이 갈파하고 있다.

▲ 경북 상주 장각폭포

“학교는 배움에 대한 근본적인 독점을 확장하고, 배움을 학교교육으로 재정의했다. 사람들이 학교와 교사의 정의를 받아들이는 한, 학교 밖에서 배운 사람들은 공식적으로 교육받지 않은 인간으로 낙인찍힌다.”

나 역시 혼자서 독학을 하였기에 사회에 적응하기가 힘들었고 수많은 난관을 겪었는데, 옛날에는 나와 같은 환경에 처한 사람이 많았다. 회재 이언적과 화담 서경덕, 그리고 퇴계 이황은 혼자서 공부했다. 연암 박지원도 마찬가지였다.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할아버지는 ‘제 아비를 죽인 놈’이라고 노하셔서 공부를 가르치지 않았다. 까막눈으로 살다가 열여섯에 결혼을 하자 처 작은 아버지가 박지원을 불렀다. “자네 여지껏처럼 까막눈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지금부터라도 공부를 할 것인가?”

그런 연유로 결혼을 하고서야 공부를 시작하여 조선 역사 속에 뛰어난 학자가 되지 않았던가,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도 순전히 독학을 통해서 그의 문학을 꽃피웠다. 세계문학사를 보더라도 위대한 작가로 손꼽히는 사람들도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찰스 디킨스는 부모가 감옥에 가는 바람에 학교를 그만두고 생계를 위해 구두약 공장에 다녔으므로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엘리어트는 16세 이후부터 정규교육을 받지 못했다. 오스틴 역시 16세 이후에는 학교를 다니지 못했고, 콘라드, 하디, 키플링이나 키이츠 등은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

디킨스는 어린 시절에 그의 삼촌이 살던 집 아래층에 있던 책방의 주인(여성)이 많은 책을 읽어주었고, 오스틴과 브론테 그리고 엘리어트는 어린 시절 책속에 파묻혀서 살았다.

헤르만 헤세는 어떤가? 중학교를 다니다가 세상을 떠돌기 시작했고 어느 날 서점의 점원으로 취직을 해서 수많은 책을 접한 뒤 세계적인 문호가 되었으며, 미국의 대통령을 지낸 링컨은 단지 책 한권을 빌리기 위해 수 마일을 걸어가며 다음과 같이 다짐했다고 한다.

“나는 공부할 것이며, 준비할 것이다, 그러면 기회가 올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혼자 무언가 모를 미지의 세계가 도래하기를 갈망하며 읽었던 독서는 그 어떤 것보다 효과적인 교육의 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장자의 학풍을 계승한 열자(列子)는 ‘책이란 큰 도둑이 재물을 훔치듯 골라 읽어야 한다.(大盜讀書)’고 하였다. 좀도둑처럼 아무거나 잡동사니까지 훔치다가 보면 실속이 없으니, 큰 도둑처럼 값이 나가는 금은보화만 훔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독서법이나 공부 방법은 과연 보편타당했을까? 아니다. 나는 무척 편벽된 독서를 한 사람이다. 누구 한 사람 나에게 ‘이런 책을 읽어라’ ‘이렇게 살아라’ 하고 조언해 줄 사람이 없었기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마치 연애를 하듯 놀이를 하듯 읽었고 내 식대로 살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나만이 아니었다.

영국의 철학자인 허버트 스펜서는 40세까지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는 몹시 게을렀고 아버지는 관대했다.

그의 나이 13세에 아버지는 허버트를 엄격하기로 소문난 백부 밑에서 공부하도록 힐튼으로 보냈다. 그러나 허버트는 곧 달아나서 더비에 있는 집까지 터벅터벅 걸어왔다. 첫날은 48마일, 둘째 날은 47마일, 세 째 날은 20마일을 약간의 빵으로 때우며 걸어왔다. 그러나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2~3주가 지난 후 다시 힐튼으로 돌아가서 3년 동안 머물렀는데 그것이 그가 받은 유일한 정규교육이었다.

“산천을 유람하는 것은 좋은 책을 읽는 것과 같다.” 바꿔 말하면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산천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공통된 말이다. 조선 성리학의 근원을 제공한 주자(朱子)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견문이 넓은 사람일수록 안목이 좁은 사람을 본적이 없다.”

공부란 것이 학교나 연구실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현장을 직접 보아야만이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 봉화 청암정

조선 시대 사대부들 사이에 회자되었던 ‘아름다운 선비’는 ‘문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文史哲)을 통달한 사람을 말함이었다. 현대 사회에서 수학 한 과목을 잘하거나 영어, 또는 국어, 과학 한 과목을 잘해서 잘 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한 과목을 잘하면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라 부분적으로만 아름다운 사람으로 여겼다.

앙드레 지드도 〈지상의 양식〉에서 “서책(書冊)을 불살라버려라. 강변의 모래들이 아름답다고 읽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다. 원컨대 맨발로 그것을 느끼고 싶은 것이다. 어떠한 지식도 우선 감각(感覺)을 통해서 받아들인 것이 아니면 아무 값어치도 없다.”그의 말처럼 가보지 않고서 알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 것인가?

저마다 다른 우주 같은 존재가 사람이다.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저마다 다른 삶, 그리고 저마다 다른 소질을 가지고 태어나 살다가 가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다고 인정할 때, 우리가 금과옥조처럼 떠받들고 있는 정규교육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정규교육이 맞는 사람도 있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공부법을 가지고 공부하는 게 나은 사람도 있다. 자득(自得)처럼 좋은 것도 없다. 그렇다는 전제 하에 어떤 공부가 좋은 공부인가? 저마다 다른 환경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사람은 저마다 다른 우주(宇宙)다. 거기에서 출발하자. ‘저마다 잘하는 것을 하도록 하자.’ 그것도 첫사랑의 연인과 연애를 하는 것처럼 하자, 그렇게 순간순간 설레며 읽은 책이나 공부는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화살이 과녁에 들어가 박히듯 가슴속에 쏙쏙 스며들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공부라고 할 수 있다.

수학을 못하는 사람이나 영어를 못하는 사람(과학이나 국어를 비롯한 전 과목이 해당됨)들에게 많게는 10년에서 6년 아니면 평생토록 주눅 들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공부법은 아닐 것이다.

“나는 왜 이렇듯 좋은 책을 쓰는가?”“나는 왜 이토록 현명한가.”라고 자신 있게 말했던 사람이 프리드리히 니체였다. 그렇게 살아도 얼마 못 사는 인생인데, 나는 왜 이렇듯 무슨 공부, 무슨 공부를 못하는 가? 하고 자괴감에 빠져 가장 좋은 시절을 랭보의 시 제목처럼 〈지옥에서 보낸 한 철〉처럼 보낸다면 인생이 얼마나 소모적으로 보내는 것인가?

내가 원하는 일을 할 때 내가 가장 행복하고, 내가 행복할 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다. “창조란 불행한 것들 사이로 자신의 길을 금 그어 간다.” 프랑스 철학자인 들뢰즈의 말이다. 그렇게 돈키호테처럼 살다가 간 몇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사람은 저마다 그의 재질과 성격을 결정하는 개인 특유의 기질을 타고 나는데, 이는 변화시킬 수도 강요할 수도 없는 것이며, 오로지 각자가 만들어가고 완성시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루소의 말이다.

그러나 그런 몇 사람들은 예외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해진 그 질서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한평생을 살다가 간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질서, 즉 자유롭게 풀어줘도 그것을 달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오히려 적당한 구속을 원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대다수이다.

몇 개의 문제를 잘 풀고, 시험을 얼마나 잘 보느냐에 따라 남은 인생이 결정되는 시대가 지금의 이 시대다. 이러한 시대에 스스로의 의지대로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면서도 의식주 걱정이 없는 세상을 꿈꾸는 것은 가능할까?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내 공부법은 이렇다.

‘내가 좋아하는 책을 연애하듯 읽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자연이 되어 살자.’ 생각은 좋은데, 실천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리 못할 것도 없다. 〈노마디즘〉의 저자인 이진경의 글을 보자.

“생존의 중력을 이기기 위해서 하는 강의는 노동입니다. 대학에서 하는 강의가 흔히 그렇지요. 뻔한 내용을 특별한 준비도 없이 떠들어대야 합니다. 여기서 최대의 ‘장애’는 지겨움이지요. 중력을 견디듯 지겨움을 견뎌야 합니다. 비슷하게 시험을 보기 위한 공부라면 그건 틀림없이 지겨움과 힘겨움에 수반되는 고통을 이기는 싸움이 되게 마련이지요. 생계를 위해서 쓰는 글이나, 요구되는 ‘업적’을 채우기 위해 쓰는 글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 다 ‘노동’의 일종이지요.

그러나 자신이 좋아서 하는 공부, 신나고 즐거워서 하는 연구는 심지어 하루의 대부분을 책과 씨름하는 경우에조차 이런 중력과 저항, 고통과 인애의 성분이 없습니다. 스스로 던져 놓은 문제를 들고 돌진하는 연구나 집필 또한 마찬가지지요. 자기가 좋아하는 것, 자기가 몰두해서 공부한 것을 강의 하는 것은 지겨움과 같은 고통을 전혀 수반하지 않습니다. 신나고 즐거운 ‘놀이’나 ‘게임’ 이 되지요. 중력을 받는 지적 노동이라면 당연한 전공, 실적, 이런 것과 관계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만, 자유행동은 전공과도 상관없고, ‘실적’과도 무관하게 자기의 문제의식이 뻗치는 곳 어디로든 나아갈 수 있지요. 이런 점에서 중력을 받는 노동으로서의 공부와 자유행동으로서의 공부는 크게 다르지요. 한 번 잘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은 공부를 노동으로 하고 있는지, 자유행동으로 하고 있는지.”

이진경 저 노마디즘 2 유목의 철학, 전쟁기계의 정치학에 실린 글이다.

나는 요즘 사람들에게 그렇게 필요하다는 수학의 적분 미적분을 모른다. 영어나 과학도 못한다. 단지 혼자서 문·사·철을 공부했을 뿐이다. 그래도 사는 것은 지장이 없다. 일반적인 사람이 말하는 대로 잘 사는 것은 아니지만 세끼 밥 굶지 않고 소신껏 살고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고 운명처럼 이 나라 이 땅을 떠돌면서 수많은 책들과 벗하며 살다가 보니 오늘에 이르렀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자. 그처럼 호사를 누렸던 제왕들도, 삼성그룹의 이병철, 현대그룹의 정주영회장도 몇 푼의 재산이나마 가지고 가는 것을 보았는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좋아하는 사람만 만나고 살다가 가는 삶’ 그게 복 받은 삶이 아닐까?

“만약 내가 죽은 다음에 훌륭한 글을 남길 수 있다면 그 영광과 명예는 모두 고래잡이 덕이다. 고래잡이 배야 말로 나의 예일 대학이요, 하버드 대학이다.” 4년간에 걸쳐 포경선을 타고 난 뒤 〈백경〉을 지은 허만 멜빌이 서술자 이슈메일을 통해서 한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책과 산천이 나의 종합대학교였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를 제법 먹은 지금도 자연 속으로만 들어가면 신이 난다. ‘온 산천이 잘 써진 한 권의 책’ 과 같은 곳인 자연, 자연 대학교 만 만세다,

문화사학자·사단법인 우리땅 걷기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