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모 전투기 이륙 돕는 캐터펄트, 중국도 최신 전자기식 도입한다

2020. 1. 6. 15:35강의/진주만

항모 전투기 이륙 돕는 캐터펄트, 중국도 최신 전자기식 도입한다

 

1986년 지중해에서 시행된 훈련 중 항공모함에서 출격하기 위해 캐터펄트 위에 올라간 F-14 전투기. 미국 해군 제공

1986년 개봉한 톰 크루즈 주연의 <탑건(Top Gun)> 도입부는 이 영화를 좋아하는 팬들에게 언제 봐도 설레는 장면이다. 멋진 배경 음악과 함께 갑판에선 항공모함 함상 요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함재기인 ‘F-14 톰캣’ 조종석에선 파일럿들이 긴장된 자세로 이륙 지시를 기다린다. 이윽고 자세를 잔뜩 낮춘 함상 요원들이 팔을 전방으로 뻗는 수신호를 보내자 F-14는 갑판을 박차고 힘차게 출격한다. 이 장면이 특히 인상적인 건 육중한 덩치의 F-14가 순식간에 가공할 만한 속도로 빨라지는 박진감 때문이다. 말 그대로 공기를 가르며 갑판 위 수십m를 전속력으로 달리는가 싶더니 이내 하늘로 훌쩍 날아오른다. 항공모함이 등장하는 다른 영화나 항공모함의 위용을 적에게 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미디어에 노출하는 훈련 장면에는 대개 함재기의 이런 ‘다급한’ 이륙 모습이 들어간다.

함재기가 갑판 밖으로 거의 내던져지듯 속도가 붙을 수 있는 비밀은 바로 ‘캐터펄트(Catapult)’라는 이륙 보조장비에 있다. 함재기 동체에 가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사실 함재기들은 ‘사출기’라고도 불리는 이 장치에 몸을 싣고 강하게 등이 떠밀리듯 이륙한다. 캐터펄트는 본래 고대 전투에서 적에게 돌을 날리기 위한 ‘투석기’를 뜻했다. 탄성이 좋은 나무와 끈을 이용해 돌을 성벽이나 적진을 향해 던지던 도구가 현대전에 와서는 항공모함에 탑재된 함재기를 힘껏 밀어 이륙을 도와주는 장비로 의미가 달라진 것이다.

캐터펄트는 왜 필요할까. 최근 건조된 항모는 전체 길이가 300m가 넘지만 실제로 함재기 활주를 위해 사용하는 공간은 극히 제한적이다. 갑판 위에서는 다른 함재기와 각종 전투장비, 인력들이 동시에 운영되기 때문이다. 이런 좁은 곳에서 바다로 떨어지지 않고 이륙을 하려면 캐터펄트가 반드시 필요하다. 캐터펄트의 힘은 어느 정도일까. 최신 캐터펄트 기종은 대략 90m의 길이가 주어지면 36t짜리 함재기를 이륙시킬 수 있다. 완전히 멈춰 있는 함재기를 단 몇 초 만에 시속 260㎞로 가속해 이륙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캐터펄트가 없다면 실현할 수 없는 일이다.

전자기식은 출격 횟수 높여줘

중국, 미국 이어 세번째 항모에


이런 엄청난 힘을 내는 동력은 증기다. 미국 항모의 경우 원자로에서 나오는 열로 물을 데워 만든 증기를 강하게 내뿜는 식으로 캐터펄트를 운영한다. 물이 증기로 변신할 때 부피가 1700배 늘어나는 성질을 이용한 것이다. 물을 팔팔 끓이면 주전자 뚜껑이 수증기의 힘에 밀려 들썩이는 원리와 같다. 그런데 최근 중국 관영 영자매체인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중국이 바로 이 캐터펄트를 사용하는 항모 운영국 대열에 합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타임스는 자국의 군사전문지를 인용해 2년 안에 3번째 항모가 진수되고 2025년까지 전투 준비를 완료할 수 있을 것이라며 3번째 항모에 캐터펄트가 장착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군이 현재 운영하는 항모 두 척에는 캐터펄트가 없다. 지난달 17일 2번째 항모 산둥함을 취역시켰고, 앞서 구소련에서 미완성 상태로 도입해 개조를 거친 뒤 운영 중인 랴오닝함도 있지만 함재기들은 오로지 자신이 가진 엔진의 힘에 기대 이륙해야 한다. 이를 돕기 위해 중국 항모는 앞부분이 하늘을 향해 비스듬히 솟구쳐 있는 스키점프대를 달고 있다.

물이 증기 될 때 부피 1700배

몇 초 만에 시속 260㎞로 가속

증기 동력으로 함재기 밀어줘

“증기식은 고난도 기술 아니다”


하지만 이런 스키점프대가 엄청난 힘으로 함재기를 밀어주는 캐터펄트를 대체할 수는 없다. 캐터펄트가 없다면 함재기의 몸을 가볍게 해야 이륙이 가능한데, 이는 연료나 무기를 양껏 탑재할 수 없다는 뜻과 같다. 중국 항모 기술의 원조 격인 러시아 역시 캐터펄트 기술은 없다. 1954년 원형이 나온 증기식 캐터펄트는 구식 기술이지만 안정적인 운영 능력을 갖춘 나라는 미국밖에 없는 것이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선임분석관은 “증기식 캐터펄트가 고난도 기술은 아니다”라면서 “하지만 구소련은 미국처럼 원거리에서 해양작전을 할 이유가 적었기 때문에 장거리 폭격기 개발에 더 노력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지난 17일 정식 취역한 중국 항공모함 ‘산둥함’. 캐터펄트 없이 함재기가 이륙할 수 있도록 뱃머리가 하늘 방향으로 살짝 솟아 있다. AP 연합뉴스

중국이 바로 이 캐터펄트의 미국 독점 시대를 끝내겠다는 구상을 밝힌 것이다. 게다가 중국군이 준비하는 캐터펄트는 증기식이 아닌 전자기식이다. 물을 끓여 수증기를 만들지 않고 전기의 힘으로 함재기를 밀어붙인다. 무거운 자기부상열차가 공중에 떠서 달리는 것과 비슷한 기술을 캐터펄트에 도입하려는 것이다. 신 선임분석관은 “전자기식 캐터펄트는 증기를 다시 채워 넣어야 하는 기존 방식보다 단위시간당 출격 횟수를 늘릴 수 있다”며 “더 많은 함재기를 더 짧은 시간에 띄울 수 있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은 최신 항공모함 제럴드 R 포드에만 전자기식 캐터펄트를 채택하고 있다. 만약 중국의 구상이 현실화한다면 적어도 캐터펄트에 있어선 미국과 같은 수준의 기술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실제로 중국은 캐터펄트를 3번째 항모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강조하고 있다. 더 강력한 무장을 갖추고 더 넓은 작전반경을 가진 함재기를 띄울 수 있게 될 중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어떤 위치를 누리게 될지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