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복이냐, 멸망이냐...미국의 일본제재 사례로 본 미국의 대북제재의 의미

2020. 10. 28. 12:57강의/진주만

신상목의 번번(飜飜)한 이야기

 

 
2017년 3월 20일 오전 미 해군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CVN 70)가 훈련을 위해 부산 해군작전사령부 부산기지에서 출항하고 있다./ 조선DB


제재(sanction)는 국제정치학 교과서에 외교의 수단의 하나라고 설명되어 있지만, 실제 제재를 외교 목적 달성을 위해 사용하는 나라는 극히 드물다. 제재의 대상이 그로 인해 생존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정도로 실효적인 제재를 위해서는 힘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제재를 실질적인 외교수단으로 활용하는 나라는 초강대국뿐이다. 그 중에서도 미국 정도나 제재를 외교수단으로 적극 활용한다. 다른 나라는 엄두를 내지 못한다.

 

미국의 외교사 중 가장 역사적인 제재는 2차세계대전 전인 1941년 소위 헐노트(Hull Note)로 귀결된 대일압박 제재이다. 헐 노트는 1941년 11월26일 미국의 코델 헐 국무장관이 일본의 주미대사 노무라 기치사부로와 미일교섭 대사였던 쿠루스 사부로에게 전달하였으며, 사실상 대일 최후통첩이 되었다. 미국은 태평양 지역에서 자국의 안보 위협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일본의 팽창 야욕을 철저히 분쇄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헐노트는 실질적으로 일본에게 '항복 아니면 멸망(succumb or perish)'의 선택지만 남기는 최후 통첩이었다. 미국은 일본이 제시한 화해안을 안보위협 해소에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일본의 제안에 대해 일본의 숨통을 죄는 제재안을 역제시함으로써 어떠한 비용을 치르더라도 미국의 핵심 이익과 상충되는 일본의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메세지를 분명히 했다.

 

 

그 숨통을 죄는 제재의 핵심은 석유와 금융이었다. 일본의 국가 존립과 관련된 사활적 이익이 달린 라이프 라인을 직접 겨냥한 것이다. 만약 어떤 나라가 미국의 이러한 제재를 무력화하는 시도를 했다면, 즉 석유나 돈줄을 일본에 제공하려고 했다면 그 나라는 미국에 의해 일본과 동일한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미국은 사활적 이익이 달린 안보위협 제거를 위한 특단의 조치에 초를 치는 행위를 용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일본은 미국의 제재에 정면으로 도전하였고 그 결과는 다들 주지하는 바와 같다. 항복(Succumb)을 선택하지 않은 댓가는 멸망(perish)이었다.

 

미국의 제재는 그런 의미가 있다. 한국은 한 번도 제재를 외교수단으로 사용해 본 적도 없고 제재 이후의 힘의 사용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미국의 제재 외교와 그 의미를 읽어내는데 감각이 무디다. 미국은 힘의 사용 이전에 제재를 통해 '항복 아니면 멸망(succumb or perish)'의 메세지를 던진다. 그 메세지 수신 감도를 높이는 것은 한국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외교 능력의 하나이다.

 

그런 미국을 호전적 제국주의 망상에 빠진 악의 근원이라고 욕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남을 욕한다고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미국의 안보위협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분명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미국의 제재에서 삐져나가려는 시도부터 하는 것은 큰 위태로움을 초래할 것이다. 다들 이 정도는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제재 대상의 당사자였던 일본은 미국 제재 외교의 의미와 각 단계에서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감수성이 잘 발달해 있다. 긴가 민가 하고 잘 모르겠거든 일본에게 물어도 보고 그러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