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신정변

2019. 7. 12. 16:01한국사

갑신정변은 고종21년에 일어났다. 그날 밤 우정국 총판 홍영식은 우정국 낙성을 기념하는 연회를 베풀고 많은 사람들을 초청했다. 그 자리에서 민영익, 윤태준, 이조연, 한규직 등 민씨 척족들과 친청파 대신들을 일망타진할 계획이었다. 그들은 약속된 방화를 신호로 민씨 척족들을 살해하고 바로 궁궐에 들어가 고종과 왕비 민씨를 장악할 계획이었다. 이윽고 바깥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민영익이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 나가자 자객이 달려들어 칼로 쳤다. 그러나 제대로 목을 베지 못하고 귀만 잘랐다. 칼을 맞은 민영익은 안으로 도망쳐 들어와 연회장에서 쓰러졌다. 순간 연회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때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등은 재빨리 자리를 빠져나와 창덕궁으로 갔다. 그들은 고종와 민씨를 협박하여 일본군을 부르게 하고 경우궁으로 옮기도록 했다. 한밤중에 고종과 민씨는 경우궁으로 거처를 옮겼다. 김옥균 등은 왕명을 위조해 민씨 척족들과 친청파 대신들을 경우궁으로 오게 했다. 18일 새벽 민태호, 민영목, 조영하, 윤태준 등이 입궁했다가 고종이 보는 앞에서 살해당했다. 고종이 죽이지 말라고 명령했지만 소용없었다. 고종은 눈물을 흘리며 고통스럽게 울부짖을 뿐이었다. 경우궁으로 옮겨올 때만 해도 고종과 민씨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민태호 등이 눈앞에서 살해당하는 것을 보고서야 정변임을 깨달았다. 민씨는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기지를 발휘했다. 18일 아침에 심상훈이 개화당 지지자로 위장하고 경우궁에 들어와 민씨를 알현했다. 그때 민씨는 속히 밖으로 나가 민영환에게 내부 상황을 알리도록 했다. 아울러 소식을 전할 일이 있으면 수라상 밑에 몰래 서찰을 붙여 올리면 된다고 덧붙였다. 심상훈의 연락을 받은 민영환은 수라상 밑에 밀서를 붙여 보냈는데, 넓은 창덕궁으로 옮기면 일이 수월하리라는 내용이었다. 고종과 민씨는 경우궁이 불편하니 창덕궁으로 돌아가겠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18일 오후 5시쯤에 그들은 창덕궁으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19일 오후 3시경, 만반의 준비를 마친 조선군과 청나라 군대가 창덕궁으로 진입함으로써 김옥균, 박영효 등은 일본인들과 함께 궁궐을 탈출해 일본으로 망명했다.

 

조선왕비실록, 신명호,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