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선비정신

2019. 12. 24. 11:10강의/공부법

김병일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前 기획예산처 장관

AI·로봇과 경쟁하는 시대

창의력·공감능력 더 필요

널리 배우고 묻는 공부법

선비정신과 밀접한 관계

인류의 위대한 스승 孔子

이 시대 지식인에게도 등불


얼마 전 어느 대학으로부터 4차 산업혁명 시대와 선비정신을 주제로 강연 요청을 받았다. 선비수련 보급에 종사하는 입장에서는 얼핏 거리감이 느껴지는 주제였지만 기꺼이 수락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선비정신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밝혀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유는 두 가지다. 먼저 선비수련원을 찾는 수련생들에게 이 주제를 진솔하게 들려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이다. 수련생들은 한결같이 앞으로 이 세상에서 더 쓰임새 있는 사람이 되려고 찾아온다. 그러므로 그들이 맞이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선비정신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제시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다음은 필자 또한 4차 산업혁명 시대와 관련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는 점이다. 주변 사람들은 필자에게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고, 또 그런 세상에서 선비정신으로 살아가면 낙오되지 않겠는지 등에 대해 묻곤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특징과 요청되는 인간상 또는 자질 그리고 이를 위해 준비해야 할 일과 롤모델 등에 대해 한 번쯤은 살펴볼 요량을 하던 차였다.



4차 산업혁명 시대는 그동안 인류가 맞이했던 이전의 산업혁명 시대와는 사뭇 다르다. 인공지능, 로봇,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은 가상성을 갖는 정보기술(IT)과 전통산업기술의 결합을 특징으로 한다. 따라서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르고, 삶의 질 또한 놀라울 정도로 향상되고 있다. 첨단의료기술 덕분에 질병의 진단과 치료가 고효율 저비용으로 변화하고 있고 동시통역 기술의 발달로 언어장벽도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아하기만 할 일은 아니다. 일자리 역시 많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일례로, 옥스퍼드대 칼 프레이와 마이클 오즈번 교수는 10∼20년 내 미국 총고용의 47%가 위험하다고 진단한 바 있다. 이런 현상이 미국뿐이겠는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왜 일자리를 걱정해야 할까? 인간의 성공방식이 바뀌는 까닭이다. 지금까지 성공적인 삶이란 전문직이 되거나 공직이나 대기업에 들어가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다. 따라서 인간 대 인간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경쟁자가 바뀐다. 바로 인공지능과 로봇이다. 이 새로운 경쟁자와는 지식정보 습득의 분량과 활용 속도 면에서 경쟁이 될 수 없다. 화이트칼라 영역까지도 급속도로 장악해 들어오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앞으로 대부분의 일자리가 이들에게 잠식당하리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렇다면 모든 일자리의 운명이 이럴까? 그건 아니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가는 과학자와 첨단기술 인력은 당연히 필요하다고 하면서 동시에 연예인, 작가, 영화감독, 도예가, 요리사처럼 풍부한 감성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창조적 직업과 프로운동선수처럼 자동화할 필요가 전혀 없는 직업 그리고 간호사, 미용사 등 사람들이 로봇에 맡기기를 꺼리는 직업들은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이라 예상한다.

이렇게 본다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사람은 두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혁신 융합하는 신지식인이다. 이런 인재는 주입식 교육으로는 육성이 어렵다. 질문하고 토론하는 교육방식이 더 효율적이다. 세계 인구의 1%에 못 미치는 유태인이 노벨상을 20% 이상 받은 것은 하브루타(Chavruta)라는 질문식 공부법 덕분이다. 최근에는 미국도 ‘거꾸로 교육’이란 이름으로 이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둘째, 공감 능력을 갖춘 인성 바른 사람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아무리 뛰어나도 인간의 따뜻하고 어진 인품을 흉내 내기는 어렵다. 아직까지 이것은 인간의 고유능력이다. 지식과 기술은 로봇이 더 잘할 수 있는 시대가 곧 온다. 따라서 앞으로는 의사나 변호사 같은 고도의 전문직도 고객과 마음을 열고 소통하고 공감해야 환영을 받는다. 인간이 타인에게 가장 원하는 것이지만 로봇이 대신하긴 힘든 능력이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더 필요한 창의력과 공감 능력이 선비정신과 무슨 관계에 있을까? 우선 창의력은 선비의 공부법과 연관된다. 선비는 ‘널리 배우고 깊이 묻고 신중히 생각하고 명확하게 분별하고 독실하게 실천하는 5단계 공부법’을 생활화한 사람이다. 유태인의 문답교육보다도 더 깊이 있는 교육방식이다. 일본에서 출간한 ‘과학사 기술사 사전’에 15세기 전반기 세계적인 발명품(62개)의 거의 절반(29개)이 조선에서 발명된 것으로 기록돼 있는데 이것이 당시 교육방법의 우수성을 증명한다. 공감 능력도 마찬가지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선비가 평생을 걸쳐 실천한 부자유친, 군신유의, 부부유별, 장유유서, 붕우유신의 다섯 가지 윤리 즉 오륜(五倫)의 본질이 인간관계와 밀접한 덕목이라는 점이 무엇보다 이를 잘 말해준다.

선비정신과 관련해 1988년 파리에 모인 노벨상 수상자들이 공자를 인류의 가장 위대한 스승으로 선정한 일이 떠오른다. 현대과학 문명의 최고수들이 앞으로 인류는 공자를 배워야 한다고 공언한 것이다. 그런데 공자의 가르침이 곧 유학이고, 이것을 누구보다 열심히 배우고 실천한 사람이 바로 우리 선비이다. 퇴계의 삶이 대표적이다. 7남매 막내로 태어난 퇴계는 편모슬하의 불우한 환경을 딛고 스스로 노력으로 매우 탁월한 지식인이 됐다. 그리고 학문과 지위가 높아질수록 더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존중하는 삶을 살았다. 그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이유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신지식인과 공감능력을 갖춘 인재가 되는 것이 꿈이라면 이런 퇴계보다 더 적절한 롤모델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