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 작가의 ‘세종의 독서와 공부’ ⑤]시험문제 쉬워야 하나, 어려워야 하나

2019. 12. 24. 11:37강의/공부법

“과거시험 실시는 참다운 인재를 얻으려 함이다. 어떻게 하면 선비들이 실속 없이 겉만 화려한 버릇을 버리게 할 수 있을까.” <세종실록 즉위년/10/07> 2014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실시됐다. 수험생은 총 9개로 나뉜 등급 점수를 받는다. 등급과 표준점수에 따라 대학 진학의 희비가 엇갈리게 된다. 해마다 65만 명 가량의 수험생이 사력을 다해 공부한다. 경쟁이 치열한 만큼 부정행위도 없지 않다. 교육당국은 부정행위와 실수를 막기 위해 전자기기 사용 불허 등을 사전 교육하고 있다. 그러나 해마다 100명 이상이 휴대전화 소지 등으로 아쉬움을 남겼다. 이는 근본적으로 어려운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각종 시험 직후에는 난이도 이야기가 나온다. 대개 시험 문제가 너무 어렵거나 쉬워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이들의 볼멘소리다. 성적 분포는 종 모양(bell-shaped)이 되는 게 좋다. 출제위원은 득점이 고르게 분포되는 난이도 조절을 목표로 하지만 예상이 빗나가기도 한다. 지난 해 대학입시에서도 수능문제 난이도에 대해 잠시 설왕설래했다. 한 영재학교 일부 학부모는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한 대학에서 낮은 수준의 문제를 출제해 심화공부를 해온 영재학교 학생들이 손해를 봤다는 주장이었다. 또 지난해 대학 논술 시험이 비교적 쉽게 출제됐다. 이에 따라 올 해 논술학원이 직격탄을 맞았다. 문을 닫는 학원이 속출했고, 적자 상태로 유지하는 곳도 많았다. 모든 시험은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쉬워도 문제, 어려워도 문제이다. 세종은 문제 수준에 대해 어떤 입장이었을까. 세종의 과거시험 원칙은 ‘쉽게 그리고 현실적으로’였다. 유능한 인재를 선발하는 데 꼭 어려운 문제로 테스트할 필요를 느끼지는 않았다. 이는 당시 현실이 학문이나 기술의 최첨단과 거리가 있는 사회라는 점도 배경이지만 세종의 시험관과도 관계가 있다. 임금의 교육 목적은 과거시험에서 잘 나타난다. 정치에 적용할 수 있는 책읽기, 유능한 관리를 선발하는 제도에 관심을 뒀다. 학문을 위한 순수학문과 시험 자체를 위한 과거시험을 반대했다. 세종은 즉위년(1418년) 10월 7일 첫 경연에서 과거제도의 손질을 지시했다. 문제를 쉽게, 현실적으로 내라고 했다. 공부 도중에 임금은 주위에 물었다. “과거시험을 통해 선비를 뽑는 것은 참다운 인재를 얻으려 함이다. 어떻게 하면 선비들이 실속 없이 겉만 화려한 버릇을 버리게 할 수 있을까.”

변계량과 이지강이 답했다. “과거 시제(科擧試題)로 처음에는 유교의 경전인 사서오경의 의심나는 내용을 논술하고, 경전의 의미를 해설하는 문장을 쓰도록 했습니다. 또 나중에는 보고 어떤 사건에 대한 처리책을 쓰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학생이 실학에 힘쓰지 않아 최근에는 초장에서 경서의 구절을 외우고 해설하게 법을 바꾸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영민하고 예리한 인재가 모두 무과로 달려갔습니다.” 과거 1차 시험에서 경전의 어려운 내용을 글로 풀이하고, 글로 해설했다. 그러나 그 부분을 암송하고 해설하도록 한 결과 문과 응시생이 줄었다는 것이다. 이에 임금은 “경서의 암송과 해석은 극히 어렵다. 대학자인 변계량도 다 정통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어려운 과거 시험 개선을 지시했다. 세종은 시험방법을 놓고 여러 차례 논의했다. 글을 짓는 제술(製述)과 경서를 외는 강경(講經)에 대한 방법이었다. 시험방법의 공정관리도 논의했다. 이는 실사구시 정신이었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과거제도를 유지하려는 의도였다. 실사구시 추구는 과거시험 논제에서 잘 드러난다. 과거 시험은 소과 2차례, 대과 3차례 실시된다. 대과의 최종 시험은 임금 앞에서 보는 전시(殿試)다. 임금이 직접 논제인 책문을 출제했다. 시국현안 타개책을 묻는 질문이 주류를 이뤘다. 후보 33명이 모두 임금 앞에서 시험을 치른다. 합격이 확정된 상태에서 순위 가리기다. 하지만 갑 을 병 3과로 나뉜 합격자는 임용에서 차이가 있다. 갑과의 장원 급제자는 종6품 이상의 참상관으로 임명되는 데 비해 병과 합격자는 정9품으로 관직을 시작한다. 세종은 지극히 현실적인 대안을 물었다. 세종이 17년(1435년)에 낸 과제를 보자. 스승과 제자가 본분을 다하라고 지시하기도 문제) 인구를 파악하고 과세하는 호구(戶口)의 법이 세밀하지 못해 누락자가 80~90%로 추정된다. 미등록자를 찾아내다 보면 백성이 괴롭게 된다. 인구조사와 등록을 충실하게 하고 백성의 부담을 공평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기술하라! 이는 영락없는 요즘의 대학 논술문제다. 지문은 대학 논술의 제시문 2개 분량이고, 질문 사항은 5~7개 정도다. 답해야 하는 내용은 지극히 현실적인 게 많다. 그만큼 현실적인 논제라는 의미다. 임금은 ‘나라를 다스리는데 꼭 참고하고 싶은 내용을 고민했다’고 출제 배경을 설명했다. 세종은 위의 문제와 함께 ‘정치의 도는 반드시 옛것을 본받는다. 그렇다면 중국의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의 정치방법을 지금도 적용할 수 있겠는가?’를 물었다. 또 ‘종친들이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선생도 교육에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 스승과 제자가 그 본문을 다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라’고 했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군사제도는 농사와 군역을 동시에 행하는 부병제다. 그러나 이 제도는 문제점도 있다. 농사를 겸하기에 제대로 훈련받지 못해 군사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군사로 징집되면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다. 어떻게 하면 강한 국방력을 키우면서도 농업생산도 증대할 수 있는가?’도 눈에 띈다. 세종대왕은 현실에 바로 적용, 삶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답안을 요구한 것이다. - 글쓴이 이상주<,b> 서울시민대학에서 ‘한국의 세계문화유산’을 강의하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또 여러 단체에서 ‘조선 명문가 독서 이야기’, ‘부모와 아이가 함께 듣는 세종의 공부법’, ‘CEO책쓰기’, ‘내 삶의 스토리 글쓰기’, ‘합격 자기소개서 작성법’ 등을 강의하고 있다. 조선왕실(전주이씨 대동종약원) 문화위원으로 지은 책은 ‘세종의 공부’, ‘조선 명문가 독서교육법’, ‘10대가 아프다’ 등이 있다. www.이상주글쓰기연구소.kr - 이상주 역사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