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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그 사소한 역사 11] 윤동주문학관
[도서관 그 사소한 역사 11] 윤동주문학관 ① [오마이뉴스 글:백창민, 글:이혜숙, 편집:이주영] 도서관 이용자와 도서관 사서가 함께 쓴 도서관 역사 여행기입니다. 대한제국부터 대한민국까지 이어지는 역사 속 도서관, 도서관 속 역사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오늘날 서울은 한강을 기준으로 강북과 강남으로 나뉜다. 조선시대 한양은 어땠을까? 한양은 북촌과 남촌으로 나뉘었는데, 그 경계는 청계천이었다. 청계천을 기준으로 북쪽 동네는 북촌, 남쪽은 남촌이라 했다. 경복궁과 창덕궁에서 가까운 북촌에는 집권층인 노론이 살았고, 남산 인근 남촌에는 권력에서 소외된 소론, 남인, 북인이 살았다. 북촌, 남촌 외에 윗대와 아랫대라는 구분도 있었는데, 청계천 상류인 인왕산 아래 지역을 윗대(또는 웃대, 上垈)라 하고, 청..
2019.05.06 -
세계 라디오 듣기 무료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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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4 -
배우 이민정의 외가는 '서촌 비밀의 정원'
배우 이민정의 외가는 '서촌 비밀의 정원' [백운동천을 따라 서촌을 걷다 21] 종로구립미술관과 송석원 시사 통인시장 입구에서 옥류동천 물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맛집과 악세사리점들이 가득이다. 통인시장에서 수성동계곡까지가 소위 서촌기행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몰리는 곳에 장이 선다'는 옛말을 실감나게 만드는 곳이다. 그래서 이곳을 지나면 비록 수많은 인파에 정신없지만 우리들의 눈과 입을 한가롭게 놔두지 않는다. 하지만 뭐든지 과하면 문제가 있는 법이다. 서촌보다 먼저 관광지로 개발된 북촌 역시 이런 과도한 상업화로 인해 요즘 몸살을 앓고 있다. 서촌 역시 북촌의 후유증을 따라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서촌의 비밀정원', 박노수 가옥 큰사진보기 ▲ 박노수 화백이 거주하던..
2019.05.02 -
일제강점기 조선 최대 가정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19962 ▲ 일제강점기 윤덕영의 ‘벽수산장’과 그가 출가한 딸을 위해 지어준 집(현 종로구립미술관) ⓒ 유영호 관련사진보기 우리가 소위 '서촌기행' 때 가장 많이 찾는 명소는 대부분 옥인동 주변에 몰려 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인 1927년 이 옥인동 면적의 54%를 소유한 조선인이 있었다. 조선의 마지막 황후 순정효황후의 큰아버지인 윤덕영이 그 주인공이다. 약 1만 6천 평 대지 위에 지하 1층 지상 3층, 795평에 이르는 당시로서 조선인 최대 가옥인 '벽수산장'이 그의 집이었다. 그 위치는 앞서 들른 종로구립미술관(박노수가옥) 뒤편 대부분의 땅이다. 큰사진보기 ▲ 김수정, ‘옥인동 윤씨가옥..
2019.05.02 -
청와대 습격과 푸에블로호 사건에 숨은 사실
[백운동천을 따라 서촌을 걷다 38]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70751 [오마이뉴스 글:유영호, 편집:김지현] 1968년 1월 21일, 청와대 습격 사건 창의문 바로 아래.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과 정종수 순경의 순직비가 설치돼 있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등 32명의 북한 무장병(124군 부대)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가 총격전까지 벌어졌다. 최규식 경무관과 정종수 순경은 그 와중에 사망했다. 북한의 무장병이 그 해 한겨울인 1월 18일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능선을 타고 3일 만에 청와대까지 뚫고 내려온 엄청난 사건이다. ▲ 1.21사태 총격전으로 숨진 최규식 경무관의 동상(우)과 정종수 순경의..
2019.05.02 -
영화 <동주>가 놓친 윤동주의 벗 강처중
[백운동천을 따라 서촌을 걷다 22] 종로구 누상동 [오마이뉴스유영호 기자] ▲ 윤동주 하숙집이 있던 자리에 재건축된 2층 슬라브주택 ⓒ 유영호 박노수가옥을 나와 조금 걸으니 이내 100미터도 안 되는 곳의 연립주택담장에 그곳이 시인 윤동주가 하숙했던 집(종로구 누상동 9번지)이라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본래의 집은 헐리고 지금은 2층 다세대주택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이곳은 본래 윤동주가 존경하던 소설가 김송의 집이 있었다. 이곳에 윤동주가 1941년 하숙하였고, 이곳에서 (1939) 그리고 (1941.9) 등 그의 대표작들이 창작되었다고 쓰여 있다. 그리고 이곳 종로구 누상동에 잠시 머문 윤동주의 영향력은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2012년 창의문 앞에 '윤동주문학관'까지 건립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이..
2019.05.02 -
[배한철의 한국초상화 톺아보기] 효자 영조가 평생 누비옷을 입지 않은 이유
신숙주(1417~1475)가 단종비를 차지하려고 했던 게 사실일까. 이긍익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서 파수편(破睡篇)과 월정만필(月汀漫筆)의 구절을 인용해 “노산의 왕비 송 씨가 관비가 되니 신숙주가 여종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세조가 그의 청을 듣지 않고 단종비에게 궁중에서 정미수(시누이 경혜공주의 아들, 즉 문종의 외손자)를 기르도록 명했다”고 전했다. 단종비 정순왕후를 첩으로 삼으려고 해 지탄받았던 신숙주 초상 이런 내용은 조선 말 3대 문장가로 꼽히는 김택영이 구전 등을 정리해 엮은 ‘한사경’에도 언급된다. 김택영은 “세조가 조카를 죽이고 여러 아우들을 살해하여 임금의 지위를 훔친 것도 사악한데 (신숙주가) 단종 부인을 노비로 삼겠다고 청한 것은 매우 간사하고 악한 짓”이라고 논평했다. 단..
2019.04.25 -
[배한철의 한국초상화 톺아보기] 박문수는 어떻게 ‘암행어사의 아이콘’이 됐나
마패와 남루한 옷차림이 먼저 떠오르는 ‘암행어사’하면 단연 ‘박문수’다. 백성들의 고혈을 짜는 탐관오리를 혼내주는 암행어사 박문수 얘기는 1970~80년대 TV나 라디오 드라마의 단골 소재였다. “암행어사 출두야”라는 박문수의 호령에 지방수령들이 혼비백산해 도망하는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했다. 조선시대 암행어사는 국왕의 명으로 몰래 지방관을 감찰하고 그들의 비리를 척결하던 관원이었다. 조선시대 숱한 암행어사가 파견됐지만 유독 박문수만이 암행어사의 대표주자로 인식되고 있다. 전국에서 박문수와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어사 설화는 무려 200개가 넘는다. 오늘날까지 그의 이야기는 여전히 드라마나 소설 등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설화에서 박문수는 남들이 밝혀내지 못하는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명석한..
2019.04.25 -
[배한철 기자의 한국초상화 톺아보기] 종2품에 오른 성공한 화가 겸재 정선
국보 216호 '인왕제색도'는 비 온 뒤 안개가 피어오르는 인왕산의 실제 모습을 사실적으로 화폭에 실은 우리나라 미술계에서 불후의 명작이다. 국보 217호 '금강전도'는 마치 항공촬영을 하듯 하늘 위에서 금강산 1만2000봉우리를 장대하게 담아내 금강산 그림 가운데 단연 최고로 평가받는다. 이들 그림을 그린 겸재 정선(1676~1759)은 중국 관념산수의 답습이 아닌 중국 화본을 바탕으로 조선의 실제 산천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라는 새로운 화풍을 개척한 인물이다.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였지만 중인신분의 김홍도와 신윤복 등과 달리 양반 출신이었으며 성리학 등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고 말년에 이르러서는 벼슬까지 종2품의 동지중추부사에 오른 드물게도 '성공한' 화가였다. 건강한 삶을 살..
2019.04.25 -
[배한철의 한국초상화 톺아보기]강화도령 철종은 사팔뜨기
초상화를 그 초상화의 주인공과 동일시하는 ‘一毫不似 便是他人’(일호불사 편시타인, 터럭 한 오라기라도 다르면 그 사람이 아니다)의 명제는 중국에서 비롯됐지만 우리나라에서 만개하면서 극사실주의 화풍이 크게 유행했다. 그와 동시에 형상을 그대로 옮기는데 그치지 않고 내면의 정신을 외면의 형상으로 표현하는 경향도 두드러졌다. 유교 경전 중 하나인 ‘대학(大學)’에 ‘성어중 형어외’(誠於中 形於外)라는 귀절이 있다. “마음에 내적인 성실함이 있으면 그것이 밖으로 반드시 드러나는 법이다”라는 의미다. 조선의 선비들은 외모는 내면의 정신세계를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른바 전신사조(傳神寫照) 풍조이다. 사실 조선초상화 제작에는 원시적인 형태의 카메라인 ‘옵스쿠라’가 이용되기도 했다. 암실에 뚫린 작은 구멍을 통..
2019.04.25 -
나폴레옹 콤플렉스는 과학?
국방일보 키 작은 남자, 공격성 강하지만 더 가정적이네 나폴레옹 콤플렉스는 과학? 정치인 중에서도 나폴레옹 콤플렉스의 좋은 사례로 지목되는 이들이 많다. 시장경제를 도입한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은 키가 150㎝에 불과했다. 또한, 일본 통일을 이룩한 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키는 약 140㎝로 추정된다. 그런데 최근 나폴레옹 콤플렉스가 과학적으로 입증됐다는 소식이 전해져 주목을 끈다. 네덜란드 자유대학(VU) 연구진이 42명의 실험참가자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키가 작은 남성일수록 공격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 나폴레옹의 키가 작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다. 그의 사망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행해진 부검에서 밝혀진 157.5㎝(5피트 2인치)는 프랑스의 옛 길이 단위인 5피에 ..
2019.04.18 -
팔달문
정조의 꿈을 품은 성곽 수원화성 왜 유네스코 지정? 짧은 역사지만 동서양 군사시설이론 잘 배합. 모든 건조물 각기 다른 모양으로 예술적 가치 지녀. 실학사상 영향. 동서양 성곽축성술 집약. 보물: 팔달문 화서문 현안, 옹성벽 세로줄, 포루 5개, 정약용 가장 강조한 방어시설. 성벽 일부 돌출, 내부 비워 화포 숨겨 적공격, 수많은 총안or포혈, 포격에 한번에 부서지지 않는 벽돌건축 서남암문, 팔달산 가장 전망좋은 곳 각루, 성 네모서리에 누각세워 사방 관찰 서북각루, 온돌설치 동북공심돈, 소라각, 위아래 구멍통해 바깥동정 살피거나 사격. 팔달문. 보물402. 옹성(항아리 옹, 독 반으로 쪼갠 모양, 성문보호. 성 튼튼히 지키기 위해 성문 밖에 원형or방형으로 쌓은 작은 성,). 1980년대 팔달문주변 수..
2019.04.18 -
테디 베어의 탄생
1. 영어로 남편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는 husband다. 이 말을 음절로 나눠보면 hus는 집을 가리키고 band는 고대 노르웨이어로 주인이라는 의미다. 즉 husband의 어원적 의미는 집주인인 것이다. 집이라는 의미의 hus는 1066년 노르만족이 잉글랜드를 정복한 이후에 프랑스식 철자로 바뀌면서 house가 되었다. 프랑스어에서는 u를 ou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영어라는 고유어의 단어가 외국어인 프랑스어에 의해 철자까지 바뀐 것이다. 1066년 잉글랜드 남부 헤이스팅스에서 벌어진 노르망디 공 윌리엄의 노르만족 군대와 잉글랜드 군대의 싸움(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잉글랜드의 군인들은 도끼를 들고 노르만 기사들과 맞선다. 도끼를 든 잉글랜드 보병들은 huscarl이라고 불렸는데, 역시 집이라는 의미의 h..
2019.04.18 -
루스벨트
영어로 남편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는 husband다. 이 말을 음절로 나눠보면 hus는 집을 가리키고 band는 고대 노르웨이어로 주인이라는 의미다. 즉 husband의 어원적 의미는 집주인인 것이다. 집이라는 의미의 hus는 1066년 노르만족이 잉글랜드를 정복한 이후에 프랑스식 철자로 바뀌면서 house가 되었다. 프랑스어에서는 u를 ou로 표기했기 때문이다. 영어라는 고유어의 단어가 외국어인 프랑스어에 의해 철자까지 바뀐 것이다. 1066년 잉글랜드 남부 헤이스팅스에서 노르망디 공 윌리엄의 노르만족 군대와 잉글랜드 군대의 싸움(헤이스팅스 전투), 잉글랜드의 군인들은 도끼를 들고 노르만 기사들과 맞선다. 도끼를 든 잉글랜드 보병들은 huscarl이라고 불렸는데, 역시 집이라는 의미의 hus와 장정이라..
2019.04.18 -
리키 가문
16세 사춘기 그분이 오셨어. 중2병. 리처드 아프리카 태양아래 삽집하고 쪼그리고 앉아 화석 흙을 긁적거리는일 지긋지긋 리처드 리키(RICHARD LEAKEY) 1944년에 인류 기원 연구로 유명한 루이스 리키와 메리 리키 부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네 살 때 처음 화석을 발굴한 이래, 부모와 함께 아프리카 동부 지역에서 수많은 원시 인류 화석을 발견했으며 1984년에 발견한 호모 에렉투스 화석으로 인류 진화사를 새롭게 썼다. 1993년 비행기 사고로 다리를 잃은 이후에도 케냐 야생청 감독관으로 일하며 자연 보호 운동과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약600만 년 전 무렵 침팬지 및 보노보 등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 현생인류와는 그 모습이 다소 다르지만 골반과 대퇴골이 인간과..
2019.04.18 -
민족주의 음악
민족주의 음악: 19세기 유럽은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비엔나 회의를 개최하여 새로운 국가의 틀을 짜고 있었다. 그 와중에 유럽의 식민지들은 나폴레옹 전쟁 시의 혼란한 틈을 타서 잇달아 독립을 선언하고 치열한 독립운동을 전개해나갔으며,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었던 이탈리아와 독일은 통일된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럽인들 사이에는 민족 전체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민족주의가 빠르게 확산되었다. 19세기 유럽음악계에서도 민족주의는 가장 중요한 화두 중의 하나였다. 낭만주의 작곡가들은 출신 지역의 민속음악의 요소들을 통해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과시함과 동시에 자신만의 개성적인 어법을 개발하였다. 고국을 떠나 일종의 실향민 신세였던 쇼팽이 고국 폴란드 음악의 민족적 소재를 가..
2019.04.18 -
전후세계
2차대전이 끝나고 유럽이 두파로 갈라졌어. 동과 서로 갈라졌는데, 소련 옆의 동유럽은 사회주의, 영국 프랑스가 있는 서유럽은 자본주의.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던 발칸반도의 경우. 2차대전 때 파르티잔, 우리가 빨치산이라고 부르던 파르티잔들이 나치랑 엄청 싸웠어. 그 파르티잔을 이끌던 지도자가 공산주의자였던 티토야. 티토가 독일군을 몰아내고 1946년 발칸반도를 통합해 공산화해. 그게 유고연방이야. 티토가 대단히 카리스마넘치는 지도자인게 그때는 소련이 동유럽쪽에서 대장노릇 하던 때인데, 그 소련의 스탈린에 맞서서 독자노선을 걸어. 이걸 미국과 영국의 지원을 받아. 반공주의자였던 처칠과도 좋게 지냈어. 북한 김일성하고 각별한 사이 많은 독재자들이 욕먹는 이유중의 하나가 개인 재산을 착복해서 비난을 받는데. 티..
2019.04.18 -
체조와 민족주의
1. 얀의 체육: 국가주의 운동과 결부된 체육을 전개한 가장 대표적인 지도자이며 애국자는 얀Jahn이었다. 그는 조국에 대한 애국심과 독재정치를 퇴치할 수 있는 결집력을 지닌 강건한 시민을 육성하는데 체육의 최고목적을 두었다. '원기있게, 자유롭게, 명랑하게, 경건하게'라는 구호 아래 사상 최초로 일반인의 민중운동참가를 독려하였다. 민중은 국가의 자유를 확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개인의 자유도 함께 확보하며, 민중의 권리를 증대시켜야 한다는 정신을 가짐과 동시에 체력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차 위대한 독일을 건설하는 관건은 국민들의 정신적 도덕적 활력을 증대시키는 데 있다고 인식했다. 얀은 학교 교사로서 사회 첫 출발을 하였는데, 당시의 학교관례에 의하면 수요일과 토요일은 반휴일로서 오후에 수업을 하..
2019.04.18 -
화성행차
8일 화성행차 1795.윤2/9~16 군복입고 능행차 총 66회. 곤룡포입고 가마타면 편한데 왜 힘들게 말타고 무거운 군복입었나? 가마탄 왕보다 늠름하게 말탄 왕 더 쎄보여. 백성들보기에 조선을 지켜줄 믿음직한 왕이미지. 신하들도 칼차고 말탄 왕 보면 기죽어. 화성능행도 8폭 한강주교환어: 노량진 배다리 7폭 환어행렬: 화성행차 마치고 하루 쉬려고 시흥행궁 들어가는 어가행렬 6폭 득중정어사: 불꽃놀이. 화약이름 매화포. 화약무기개발. 5폭 서장대야조: 야간 군사훈련 4폭 낙남헌양로연 3폭 낙남헌방방: 과거시험. 2폭 봉수당진찬: 홍씨 회갑잔치. 정조엄마 생일파티. 1폭 화성성묘전배: 공자 위패 모신 대성전 참배 1날(윤2/9) 화성행궁 1789 창건 1796 확장 2003 중건. 일제강점기 파괴. 신풍루..
2019.04.18 -
화성행궁
정조의 효심이 지은 화성행궁 수원을 팔달산 아래로 옮긴 초기에 세워. 이때는 전각 한 채만 있었는데 화성 성곽 쌓으면서 행궁 다시 크게 짓다. 어머니에 대한 정조의 효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이름? 봉수당: 어머니의 장수를 축하한다는 뜻 신풍루: 한나라 고조 고향 ‘풍패’의 풍자를 따서 붙인 것. 장락당: 오랜 즐거움. 제일 먼저 공사한 곳. 혜경궁 홍씨 머무를 정조의 효심 깊이 배어 있는 이름. 이향숙, , 기탄출판(2008) 머물던 곳. 축하하는 뜻 봉수당 남쪽으로 긴 행랑을 연결하여 그 끝에 2층 누문인 ‘경룡관’ 지어. 왜 봉수당에 행랑 연결해서 지은 줄 아니? 어머니가 봉수당을 지나지 않고도 바로 장락당으로 가실 수 있도록 한 거. 건물 하나를 짓더라도 어머니를 생각하는 아들의 세심한 배려가 듬뿍 ..
2019.04.18